Q. 물감이 발전하기 전에 어떤 재료로 그림을 그렸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에는 천연산 광물로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여 백토, 황토, 적토, 녹토 등을 만들어 썼으며 천연 유화비소, 공작석 등을 분쇄해 쓰기도 했습니다.붓의 경우 짐승의 털을 가지런히 모아 묶어 가느다란 대나 나무 끝에 끼워 실로 동여매어 고정시킨 원시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Q. 세종은 왜 이맹종에게 자진을 명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423년부터 이맹종의 탄핵과 사형을 주장하는 의정부와 육조의 상소로 세종은 그에게 자진을 명했습니다.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으로, 형조 도관이 아뢰었다.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은 반역죄를 범하여, 일국 신민의 불공대천 원수로 머리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른것만으로도 이미 다행입니다. 하지만 맹종의 노비는 128명이나 되오니 이를 관부에 이속하게 하옵소서이에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1권 세종 1418년 10월 6일 임오 5번째 기사 입니다.또한 대신들의 압박은 더해가는데, 사간원에서 상소를 올렸다. 원망은 갚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군부의 원수는 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방간 부자가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향하여 상왕을 도모하려고 하다가 군사가 패하여 달아났으니 그 당시에 충신, 의사가 모두 방간 부자를 목베어 여러 사람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상왕 전하는 천성이 우애하시어 차마 죽이지는 아니하시고 그 생명을 보전하게 하신 것이 지금 19년이나 됐습니다.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셨으니, 진실로 마땅히 종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원수를 갚아야 될 것인데, 대간 이 소를 올려 번갈아 청한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됐으되, 전하께서 상왕의 마음을 어기기를 어렵게 여기시고 만세의 의리는 돌아보지 않으시어 그대로 두고 결단하지 않으시니 온 나라의 신민이 속을 썩이고 이를 갈지 않는 이가 없사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형벌을 밝게 잡으시어 신민의 분함을 통쾌하게 풀어주소서사헌부에서 또 상소를 올렸다.전일에 전하의 교지를 삼가 듣삽고, 또 상왕의 명령을 들었사오나, 감히 두 전하의 뜻을 어기고 방간과 맹종의 죄에 관해서 여러번 글을 올려 임금의 들으심을 괴롭혔사오니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나이다.자세히 모르겠지만 방간 부자가 군사를 일으킨 일이 누구를 해치고자 한 것이겠습니까. 설령 그 난적들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조선의 종사가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삼가 바라옵건대, 전일에 아뢴 바와 같이 지성으로 슬퍼하면서 대의를 진술하여 상왕의 마음을 돌이켜서 군부의 원수로 하여금 같이 한 하늘 밑에서 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이에 임금이 명령하여 방간 부자의 노비는 집안에서 심부름하는 것을 제하고는 모두 도관에 소속시켰다.세종실록 2권 , 세종 1418년 11월 23일 기사 3번째 기사 입니다.이 외에도 많은 상소가 올라왔고, 그동안 아버지인 태종의 뜻을 따른 세종대왕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맹종을 제거할 명분도 충분했다 여겨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밝히게 됩니다.
Q. 근대사 공부하다가 문득궁금한건데 명성황후는 훌륭한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명성황후를 직접 대면했던 서양 외교관과 선교사의 부인, 비숍 같은 영국인 여행가의 기록을 보면 일본 측과 달리 긍정적이 서술이 많습니다.명성황후는 궁중 여성으로서는 동양의 고전에 밝았고, 서양의 종교와 풍속, 정치와 의회제도, 여성의 교육과 지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지적이고 개화된 여성이었습니다.유가적 소양과 서양의 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과 왕실, 군주와 국가의 활로를 추구하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모이자 근대형의 여성정치가 입니다.
Q. 제갈량의 출사표는 어떤 내용이?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갈량의 나라에 장래에 대한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주된 내용으로,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신 량이 삼가 아뢰옵니다.선제께옵서는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하오나 폐하를 모시는 대소 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런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제께옵소서 특별히 대우해주시던 황은을 잊지 않고 오로지 폐하께 보답코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어 선제의 유덕을 빛내시오며 충의 지사들의 의기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비유를 들어 대의를 잃으시면 아니되오며 충성스레 간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또한, 궁중과 부중이 일치 단결하여 질한 일에 상을 주고 잘못된 일에 벌을 줌에 다름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만일 간악한 짓을 범하여 죄지은 자와 충량한 자가 있거든 마땅히 각 부서에 맡겨 상벌을 의논하시어 폐하의 공평함과 명명백백한 다스림을 더욱 빛나게 하시옵고, 사사로움에 치우치셔서 안팎으로 법을 달리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시중 곽유지와 비의, 시장 동윤 등은 모두 선량하고 진실하오며 뜻과 생각이 고르고 순박하여 선제께서 발탁하시어 폐하께 남기셨사오니, 아둔한 신이 생각하건대 궁중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그들에게 여쭤보신 이후에 시행하시면 필히 허술한 곳을 보완하는데 크게 이로울것이옵니다.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실이 맑고 치우침이 없으며 군사에 밝은지라 지난 날 선제께서 상총을 시험삼아 쓰신 뒤 유능하다 말씀하시었고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그를 도독으로 천거했사오니, 아둔한 신의 생각으로는 군중의 대소사는 상총에게 물어 결정하시면 반드시 군사들 사이에서 화목할 것이오며,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모두 적재적소에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 할 것이옵니다.전한 황조가 흥한 것은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하고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멀리했기 때문이며 후한 황조가 무너진것은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때문입니다. 선제께옵서는 생전에 신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일찍이 홙, 영제 때의 일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셨사옵니다. 시중과 상서, 장사와 참군 등은 모두 곧고 밝은 자들로 죽기로써 국가에 대한 절개를 지킬 자들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두시고 믿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머지않아 한실은 다시 융성할 것이옵니다.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로 남양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하였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제께옵서는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번씩이나 몸을 낮추어 몸소 초려를 찾아오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을 받들었사옵니다. 그 후 한실의 국운이 기울어 싸움에 패하는 어려움 가운데 소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위난한 상황에서 명을 받들어 일을 행해온 지 어언 스물하고도 한 해가 지났사옵니다.선제께옵서는 신이 삼가고 신중한 것을 아시고 붕어하실 때 신에게 탁고의 대사를 맡기셨사옵니다. 신은 선제의 유지를 받은 이래 조석으로 근심하며 혹시나 그 부탁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신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끝에 지난 건흥 3년 5월에 노수를 건너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갔사옵니다. 이제 남방은 평정되었고 인마와 병기와 갑옷 역시 넉넉하니, 마땅히 삼군이 북으로 나아가 주우언을 평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늙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대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옛 황도로 돌아가는 것만이 바로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드리는 신의 직분이옵니다. 손익을 헤어려 폐하께 충언 드릴 일은 이제 곽유지, 비의 , 동윤 등의 몫이옵니다.원컨대 폐하께옵서는 신에게 흉악무도한 역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을 명하시고, 만일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선제의 영전에 고하시옵소서. 또한 만약 덕을 흥하게 하는 말이 없으면 곽유지, 비의 , 동윤의 허물을 책망하시어 그 태만함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옵소서. 폐하께옵서도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옳고 바른 방도를 취하시고, 신하들의 바른 말을 잘 살펴 들으시어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좇으시옵소서.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표문을 올림에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건흥 5년 평북대도독 승상 무향후 영익주목 지내외사 제갈량
Q. 댄스스포츠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댄스스포츠는 친목이나 사교, 공연을 위한 볼룸 댄스가 아닌 스포츠로서 경기를 하기 위한 볼룸 댄스로 역사적 관점으로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에서 추던 볼룸 댄스와 민간에서 유행하던 사교댄스가 르네상스 시대 , 근대, 현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반에 처지면서 모던 댄스로 발전, 유럽이 식민지로 삼았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흑인 노예나 사회적 빈곤층 등이 여흥을 즐기기 위해 독자적으로 추었던 춤이 볼룸댄스와 융합되어 발전하면서 라틴 댄스가 되었습니다.인기에 힘입어 누가 춤을 잘 추는지 비교할 기준이 필요, 추가로 스포츠 요소가 도입되어 지금과 같은 모던 5종목, 라틴 5종목으로 표준화된 경기를 목적으로 탄생한 볼룸 댄스가 댄스스포츠 입니다.
Q. 왈츠의 유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서양 고전음악의 춤곡으로 왈츠라는 이름은 독일어의 waltzen으로 구르다, 돌다에서 온 것으로 보나, 프랑스 프로방스의 옛 춤 볼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무곡으로서의 왈츠는 오스트리아의 무곡 렌틀러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왈츠를 실제로 예술화한 것은 쇼팽과 슈트라우스 부자로, 쇼팽은 피아노 독주용의 왈츠를 많이 작곡해 왈츠를 춤추기 위한 것보다 듣고 호소하는 춤곡으로 했으며, 그 형식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3부형식의 것이 많고, 때로 서주나 코다를 두는 일도 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는 춤출 수도있고 예술적인 향기도 높은 왈츠를 작곡했는데 슈트라우스 부자의 힘으로 빈의 왈츠는 더 번성하게 됩니다.
Q. 대한민국의 헌법은 어떻게 제정되었고, 어떤 원칙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치 조직과 국민의 권리 및 의무를 규정한 최고의 법으로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곳에 적용됩니다.전문과 본문 130개조, 부칙 6개조로 구성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바탕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제헌 헌법이 제정, 이후 아홉차례 개정되었습니다.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같은 해 9우러 11일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뿌리로 하여 1948년 7월 17일 제헌 국회에서 제정한 제헌 헌법 이후, 아홉차례 개정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양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했는데 이후 북위 38도를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군, 남쪽은 미군이 군정을 실시, 한반도의 장래 문제는 모스크바 3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를 거치며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5년간의 신탁통치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도모하기로 한 안이 나오지만 한국민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합니다.결국 1948년 2월 27일 유엔 총회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되 가능한 지역 내에서만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건의, 결국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구성됩니다.구성된 제헌국회는 곧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 헌법 제정에 착수하게 되며 이어 헌법기초의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와 양원제 국회를 기본으로 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대법원에 부여한 유진오의 안이 헌법기초위원회에 제출됩니다. 그러나 내각제 안은 이승만 의장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단원제 국회와 대통령제 정부형태, 헌법위원회가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안으로 변경되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습니다.대한민국 헌법은 부직 6개조를 제외하면 총 10장 130조의 구성인데 대한민국이 국가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그 동원력이 모두 포함되어있습니다.총강에서는 먼저 주권, 국민, 영토를 규정한 후 국회나 대통령보다 국민을 더 앞세우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 중 권리가 먼저 나오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설명 후 최고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설명하며 입법부와 행정부가 나온 뒤 마지막으로 사법부가 나오는 등의 순서로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