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에도 보험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생명보험과 유사한 형태로서 신라시대의 창(倉), 고려시대의 보(寶), 조선시대의 계(契)라는 일종의 상호부조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상부상조의 민간협동 체제로서 경제적 어려움 뿐만 아니라 친목 도모로 이용됐다. 또 조선시대에는 ''향약(鄕約)''이라는 향촌의 자치규약이 있어 사망 또는 불이 났을 경우 모두가 분담금을 나눠 고통을 나눴다.근대적 생명보험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조약 체결 이후 일본인에 의해 도입됐으며, 그 후 1921년에는 한상룡 등의 실업가들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보험회사인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은 ''소''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보험 상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보험''이라고 한다.
Q. 6.25전쟁시 미국 다음으로 튀르기예가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했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터키는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의 명목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정치경제 원조 의 대상국이었으나, 고조되는 소련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 더욱 확실한 안보 보장을 요구했다. 따라서 터키는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NATO 가입에 맞추게 되었다. NATO 가입엔 비용이 뒤따랐고, 터키는 자국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역만리로 군대를 파병했다. 그 이역만리란 터키로부터 약 8,000 킬로미터 (KM) 떨어진 한반도였다. 한국전쟁에 파병된 터키군 병사 중 사상자는 3,626명, 전사자는 724 명에 달했다.
Q. 일제 강점기에 고려장 이야기를 지어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에서 고려시대 무덤 도굴을 위해, ‘고려장’이라는 풍습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이는 1999년, 충주문화방송 특선 다큐멘터리 ‘고려장은 있었는가’를 통해 처음으로 주장되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우리 역사서 어디에서도 고려장의 풍속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고려장 이야기’는 일제시대 인물 심의린이 저술한 ‘조선동화대집’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 책이 저술된 때가 일제에 의한 극심한 도굴 시점과 일치하는 점을 들어 제작진은 일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일제에서는 각종 부장품으로 그득한 옛 무덤을 도굴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랬기에 고려인들을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불효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칭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민족 비하 의식을 심어두었다. 또, 그렇게 되면 그 무덤들은 불효의 현장 그 자체였으므로, 일본은 마음 놓고 도굴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최근 학계에서는 고려장은 일본에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고려장은 우리나라에 실재했던 풍습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