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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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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전문가
부산예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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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거란과 몽골족은 같은 민족이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호-선비에서 갈라져 나온 거란족은 몽골 제국 당시까지만 해도 몽골족과 어느 정도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언어, 문화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몽골족에 동화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철학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출사표란 말의 유래를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출사표(出師表)는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하고자 황제 유선에게 올린 표문이다.출사표라는 말 자체는 '출병할 때에 그 뜻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던 글'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제갈량의 출사표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문맥 없이 '출사표'라고만 하면 제갈량의 출사표를 일컫는다. 전출사표, 후출사표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은 227년, 후편은 228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三國志)》의 , 《문선(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훗날 지어진 삼국지연의에도 원문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우산을 쓰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우산은 왕 이하 상류층만이 사용하였으며, 양산을 겸한 의례용이었다. 하늘에서 내린 비를 우산으로 받는 것은 불경이므로 서민들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일산(日傘)은 시녀가 뒤에서 앞에 가는 상전을 씌워주는 것이어서 대가 매우 길다.고려에는 장량항우산(張良項羽傘)이 있었는데 볕을 가리는 양산과 우산을 겸한 것으로 벼슬아치만 외출시에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와 같이 벼슬아치만 우산을 사용하였다. 서민들은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써서 비를 막으며 일을 하였고, 기름종이로 전모를 크게 만들어 쓰거나 갈모를 쓰기도 하였다.갈모는 기름종이로 원을 만들어 원추형으로 접어 비가 오면 모자 위에 덮어 비를 피하였다. 갓이 컸던 조선 후기까지는 갈모가 커서 몸을 모두 가릴 수 있었으나 말기에는 갓이 작아지고 갈모도 좁아져서 머리만 가리는 형국이 되었다. 날이 좋을 때에는 접어서 간수하였다가 비 올 때 펼쳐 썼다.우산은 손으로 들었지만 이것은 갓 위에 고정시켰으므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여자용 비옷으로는 기름종이로 만든 쓰개치마가 유물로 남아 있다. 폭은 보통 치마와 같고 길이는 머리에 쓰면 발목까지 올만큼 길다. 주름을 잡았고 치마말기는 흰색 무명 헝겊을 달았다.
미술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예술 작품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입니다. 처음이 작품은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60달러에 팔렸습니다. 다빈치의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다빈치의 진품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2013년 1억2750만달러에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나온 이 그림은 미술품 경매의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무려 4억5030만달러, 당시 한화로 약 4900억원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 샀습니다.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인류가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도 붓과먹을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종이가 있기 전 고대 중국에는 이미 붓과 먹이 있었습니다. 종이 대신에 거북이의 배딱지와 짐승의 견갑골에 글을 썼는데 이것은 갑골문자로 그 증거가 남아있습니다.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의자왕을 배신한 예식진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제의 장군이었던 예식진은 백제의 지방구분인 5방 중 하나를 담당한 북방령(北方領)이자 웅진성주였으나, 백제와 나당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의자왕을 끌고 백제를 멸망하게 한 후 당나라로 건너가 '좌위위대장군(左威衞大將軍)'의 높은 벼슬을 지냈습니다.
음악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오르곤이라는 악기는 어느나라의 악기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양에서는 자명금이라고도 부르는 오르골은 주로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악기였습니다. 실린더식 오르골은 1796 년 스위스의 시계 제조 회사인 '앙 뜨완 파브르 (Antoine Favre)'가 발명했고, 디스크식 1886 년 독일 폴 록만 (Paul Lockmann)에 의해 고안되었습니다..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로마제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가 약소국으로 출발해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중무장 보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맹 국가들에게 군대를 차출해달라는 요구보다는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대다수가 자국민들로 이루어진 애국심 강한 막강한 군대가 있었기에 연전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술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이중섭화가는 왜 소 그리을 많이 그리신건지?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가 이중섭은 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좀 더 나아가 소의 특성을 통해 우리 민족을 그리고자 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붉은 화면을 바탕으로 고개를 쳐들거나, 옆을 쳐다보고 있는 소의 두상을 그리는 등, 이중섭의 황소들은 거의가 움직이는 상태로 그려져 있다.
역사
2023년 7월 4일 작성 됨
Q.
조선시대 사관이 쓴 실록은 춘추관 사람들만 볼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왕조 내내 사초와 실록을 열람할 수 없도록 하는 금기가 대체로 지켜져왔고, 이를 깨고 왕이 열람을 시도할 때마다 대신들의 격렬한 항의에 의해 뜻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성계는 "사관이 나에 대해 어떻게 써 놓았는지 직접 보고 그것을 통치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라는 얘기를 꺼냈다가 신하들이 "통치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신다면 전대의 역사서를 읽는 것으로도 충분하옵니다."라고 나오자 더 말을 못 한 적이 있다. 세종은 태종실록 편찬이 끝난 뒤 부왕의 실록을 보려고 했다가 '열람한다면 후대 임금들도 본받아 실록을 보고 고칠 겁니다.' 하고 신하들이 반대해 뜻을 접었다.세종 13년 기사에 따르면 이 금기의 원형은 태종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당시에는 사초와 역대 실록 전부를 포함하는 전적인 금기는 아니었고 선왕의 실록만 열람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후 세종이 태조실록 편찬본과 태종실록의 사초를 열람하면서 태종실록을 열람하지 않은 이유로 태종실록 편찬자가 아직 살아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든 것을 보아 태종 역시 비슷한 이유로 열람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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