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은 왜 흰색옷을 좋아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인들이 흰색옷을 선호한 까닭은첫째, 흰색이 갖는 포용과 상징성 때문이다. 본연 그대로의 색인 흰색은 가장 자연과 합일되는 순색으로 지고함과 진실, 지조와 기개, 순결, 장수를 상징하며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시초를 의미한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요, 현실을 넘어선 지고의 아름다움을 담은 완벽한 색으로 성과 속, 죽음을 넘나드는 원초적인 색인 동시에 성스럽고 세속적인 색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흰색에 대해 “우리나라 풍속은 갓과 흰 베로 만든 도포를 가장 존귀한 의복으로 삼아 길사나 흉사에 모두 통용하였다”고 했다.둘째, 흰옷을 즐겨 입게 된 것은 염색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흰옷은 그 어느 색보다 더러움을 잘 타 비경제적이다. 육당 최남선은 때가 타지 않는 무색옷을 입어야 함에도 흰옷을 입는 것은 시대를 맞출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흰옷의 폐단을 지적했다. 흰옷은 염색이 필요 없다. 성호 이익은 옷 한 벌을 염색하는 데 네 식구가 한 달 먹을 양식이 들어가며, 한 필 염색하는 데 한 필 값이 들어간다고 했다. 오히려 언제라도 빨기만 하면 깨끗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흰옷이 훨씬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보니 자연히 흰옷을 즐겨 입게 된 것이다.끝으로 우리의 백의 습속에는 왕과 왕비의 국상도 커다란 몫을 했다. 실학자 이수광은 1565년 이후 여러 번 국상을 치르며 계속해서 흰옷을 입다 보니 마침내 하나의 국속이 되었다고 했다, 거기에 흰색이 상징하는 절제와 검소, 결백의 미덕과 잘 부합됐던 조선시대 국시인 성리학적 이념도 백의 습속을 지속시키는 토양이 됐다. 우리의 백의민족은 단순히 흰옷을 숭상해서가 아니라 이런 요인들로 흰옷을 즐겨 입은 데서 자연히 생겨난 것이다
Q. 훈요십조에 나오는 차현 이남은 어디를 경계로 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차현이남은 차현고개 아래와 공주고을을 감싸고 흐르는 공주강 바깥쪽 사이의 지역을 말하고 지금의 청주지방입니다.궁예가 변란을 피해 청주지방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10여살까지 살았고, 나중에 이 인맥이 정치적 기반이 되어 청주 출신을 중용하여 철원으로 도읍을 옮길 때도 중심세력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왕건 세력에 의해 궁예가 제거되자 청주지역의 임춘길, 이흔암, 선장 형제 등의 반란이 계속되어 왕건이 그 지역 호족들을 탄압하였다고 합니다.또한 청주 위쪽 차현 고개 아래에 위치한 진천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유신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여 왕건에게는 좋지 않게 인식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청주지방은 왕건이 경계한 지역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