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교의 역사는 임오군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군란이 일어나자 (한심하게도) 청나라에 진압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였고
훗날 스스로 황제가 되기도 하는 위안스카이가 이때 조선에 청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옵니다
이때 군인 뿐 아니라 당연히 장사나 보급을 위해 민간인들도 많이 들어왔는데 인천에 조계지를 정하고 이들을 거주시켰습니다
이후 청일전쟁등을 거치면서 청군은 모두 조선에서 물러가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민간인들은 계속 인천 그리고 군 수뇌부가 있었던 현재의 명동 지역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후 서울 개발 과정에서 명동의 화교 거주지는 도시 개발과 화교 억압 정책으로 해체되지만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에 중국 요리집이 많은 이유는 화교 억압 정책으로 화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는데 음식점이 그나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