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만주는 독립군과 마적떼, 일본군이 뒤엉킨 매우 험악하고 무법천지인 동네였습니다. 쌍칼이 아무리 실력자라도 거대 조직이나 군경의 추적을 피하기에는 만주 벌판이 오히려 고립되기 쉬운 장소였을 것입니다. 반면 경성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라 몸을 숨기기에 용이하고 새로운 세력을 구축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뭉치의 말대로 칼자루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대형 사고를 쳤다면 연고가 없는 타지보다는 익숙한 조선의 심장부로 숨어드는 것이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결국 만주의 살벌한 보복을 피해 상대적으로 세력권이 다른 경성으로 거점을 옮겨 재기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