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는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수렴청정을 반대하는 대신들을 학살하고, 아들의 비를 죽이는 등 잔인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그녀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남성 편력이 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태후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평가되며, 중국의 3대 악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태후가 중국의 근대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녀는 서양 열강의 침략에 맞서 중국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무술개혁을 추진하여 중국의 근대화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서태후는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붇은 별칭으로 공식명칭은 햐오슝아 깅우지 일어투 황허오입니다. 한국식 한자로는 효흠현황후입니다. 함풍 2년에 수녀로 입궁해 귀인이 되었고 회임을 해 빈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훗날 동치제가 될 재순을 낳아 비로 진급 비에 봉해진 지 1년도 안되서 귀비가 되었습니다. 2차 아편전쟁 이후 함풍제가 죽고 아들인 동치제가 6세로 등극하면서 함풍제의 정비 동태후와 함께 황태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함풍제가 살아 있을 때 동치제의 후견을 8명의 보정대신에게 맡기자 이에 불만을 품고 동태후와 결탁하여 기상정변을 일으켜 8명의 대신들을 몰아내고 섭정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