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 회담에서 한국의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의 오히라 외상은 대일 청구 금액에대해 메모 형식을 합의를 하였습니다. 메모의 내용은 일본이 한국에 총 6억 달러를 제공하되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 차관 1억 달러로 구성하였습니다. 이후 한일 협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사과 없이 청구 금액을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을 해석될 여지를 남겨 한국에서 64년 6.3 시위를 유발시켰습니다. 또한 양국간의 해석 차이를 초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