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원하였고, 여기에 조로아스터교가 선택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유목민족은 타 문화에 대해서 호의적이기도 하였고,(무역으로 먹고 살다 보니, 많이 융화되었다고 합니다.) 유목 생활로 인하여 봉건적인 제도 자체가 느슨하기에 힘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었습니다. 이에 종교를 통하여서 국민들을 규합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사용된 것이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어떤 부분에서는 기독교와 매우 유사하기도 하였는데, 우선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고 선한 행동을 지향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자유 의지가 있는데, 이 선한 생각과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한다는게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를 선택한 이유도 위와 같은 교리를 주장하고 있기에 사용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왕권 강화에도 사용하기 좋으며, 국민을 통치할 때 국가의 뜻 = 선한 행동으로 묶어서 통치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왕조 페르시아로 인하여 융성하게 되기도 하였지만, 왕국에 너무 묶이게 되면서 폐쇄적인 종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멸망과 함께 세계의 주류 종교로는 밀려나게 되고 중국의 배화교라던가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