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사사오입 사건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대한민국의 근대사 가운데 사사오입개헌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개헌을 하였기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사사오입개헌(四捨五入改憲)은 1954년 제3대 국회에서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위헌 통과시킨 사건입니다. 당시에 수학자까지 동원해서 소수점 이하는 4이하는 버리고 5이상이면 1명으로 쳐야한다고 주장하여 개헌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웠다고 하였습니다. 이 헌법개정의 주요 목적은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 집권이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국회의 다수당을 차지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유당은 그해 11월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를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철폐하기 위해 개헌안을 추진하였습니다. 즉 유일하게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는 개헌안을 단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의원 203명의 2/3인 136명을 넘지 못하고 135표만 획득하여 부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당은 203명의 2/3는 135.333...이고 이를 사사오입에 따라 반올림 하면 135명이라 하여 개헌안 가결되었다고 다시 선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승만은 1956년 3대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사사오입 개헌이란 1954년 5월 20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의 자유당이 국회원내 절대다수를 차지하자, 자유당은 대통령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제한을 철폐하고 종신토록 집권할수 있도록 하는것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에서의 표결 결과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헌법개정에 필요한 3분의 2인 136표에서 1표가 부족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유당소속 국회부의장 최순주는 부결을 선포했습니다.그런데 부결 선포가 있은 이틀 후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선은 사사오입하여 135명이면 된다고 하여 전날의 부결 선포를 번복, 개헌안의 가결을 선포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사오입개헌의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사사오입 개헌은 이승만 정부 시절 4까지는 버리고 5부터는 반올림으로 올리기 때문에 사실상 개헌 정족 수를 충족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개헌으로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애려고 한 헌법 개정이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