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옷에 묻은 핏자국을 뜨거운 물로 지우면 안 되는 이유는 혈액 속 단백질의 열변성 현상 때문입니다. 혈액 속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비롯해 알부민, 글로불린 등 다양한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평소 수용성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뜨거운 물이 닿으면 열에너지에 의해 단백질의 고유한 삼차원 입체 구조가 풀리게 됩니다. 구조가 풀린 단백질 사슬들은 서로 불규칙하게 엉겨 붙으며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응고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는 날달걀에 열을 가하면 흰자가 하얗고 단단하게 고착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변성된 혈액 단백질은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성질로 변해 옷감의 미세한 섬유 가닥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강하게 결합합니다. 게다가 헤모글로빈 중심에 있는 철 이온이 열과 산소에 의해 산화되면 붉은색 혈액이 탁한 갈색으로 변하면서 섬유를 영구적으로 착색시키기 때문에 일반적인 세탁으로는 지우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반면 찬물을 사용하면 단백질의 구조적 변성이 일어나지 않아 혈액이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상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따라서 피가 묻은 직후에 찬물로 비벼 빨면 단백질 분자들이 물에 쉽게 씻겨 내려가 얼룩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시간이 지나 굳은 얼룩이라도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든 세제나 과산화수소를 찬물과 함께 사용해야 섬유에 피가 고착되는 것을 막으며 안전하게 지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