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얼은 중인으로 차별받았습니다. 따라서 문과 응시가 제한되어 관직으로서는 큰 성과를 낸 인물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일부 서얼 가운데는 뛰어난 재주를 바탕으로 특정 분야에서 발휘한 인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허준은 서얼 출신 의관이지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동의보감>을 편찬하였습니다. 또한 유자광은 서얼 출신으로 무예와 정치적 능력을 인정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통청 운동으로 서얼들의 관직 진출도 원활했는데, 정조시대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이수 등은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