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성대원군도 처음에는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협상을 시도했지요. 러시아가 남진정책을 시도하니 우리를 도와주면 천주교를 용인하겠다고 제안했고
프랑스에서 이를 거부하자 천주교 탄압이 시작됩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개인의 철학도 있었겠지만 당시 정권을 잡은
세력이 보수적이었고 서양세력과 무역을 하면 나라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여기다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두차례의 서양의 공격과 오페르토 도굴사건으로 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를 발굴해 하는 일까지 벌어지니 더욱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고 성리학의 나라여서 부모의 묘를 헤친 서양세력과의 교역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공감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