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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터넘버원
컴터넘버원23.02.12

제주도의 돌하루방이 처음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얼마전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곳곳마다 돌하루방이 세워져있고

심지어 초등학교 앞에도 돌하루방이 있더라고요~

왜 제주도에는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고

처음에 누가 왜 돌하루방을 만들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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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석익 교수입니다.

    영조 30년(1754년)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옹중'이란 중국 진시황 때 사람으로 완옹중을 지칭하며 그는 남해 거인으로 그의 힘은 1,000명의 기운에 달했다고전해집니다. 진시황제는 완옹중이를 북방 침략자를 격퇴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생긴 명칭이고 원래는 '옹중석'으로 불렸다고합니다. '돌하르방'이란 명칭은 할아버지라는 제주도 방언인 '하르방'에 '돌'이 앞에 붙은 낱말 구조로서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등재되에 지금까지 부르게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석익 교수의 〈탐라기년(耽羅紀年)〉입니다.

    영조 30년(1754년) 당시 제주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옹중석을 세웠다고 나와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52기 돌하르방은 그때 제주목, 대정진, 정의진 등 3개 음성의 성문 앞에 세웠다고 한다. '옹중'이란 중국 진시황 때 사람으로 완옹중(碗翁仲)을 지칭하며 그는 남해 거인으로 힘은 1,000명의 기운에 달하였다고 한다. 진시황제는 완옹중이를 시켜 흉노족 등 북방 침략자를 토벌하여 격퇴시키도록 하였다.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생긴 명칭이고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옹중석, 벅수머리' 등으로 불렸다. '돌하르방'이란 명칭은 할아버지라는 제주도 방언인 '하르방'에 '돌'이 앞에 붙은 낱말 구조로서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채택한 이래 다른 이름보다 급속도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주도 상징 돌하르방의 유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최기호)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돌하루방은 제주도에서 장승을

    대신하여 세워진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아 있는 향토자료를

    보면 주로 성문의 입구나 길의 입구에

    세운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해서는 남방기원설, 북방기원설, 제주자생설 등이 제기된다고 합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2565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