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은 명나라 시기 주자학의 관학화, 형식화에 대한 반발과 명나라 중기의 사회 경제적 변화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주자학은 남송 이후 원나라를 거치면서 과거 시험의 이념이 되머 관학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자학은 암기 과목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도덕적 실천보다 이론적 논쟁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왕수인은 주자학에 의심을 품고 주희의 주석과 다른 새로운 경전 해석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는 주자학이 현실과 괴리된 괴리가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마음이 곧 천하만물의 이법이므로 마음을 함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며 간단하고 쉬운 학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양명학은 형식화된 주자학(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명나라 사회에 부흥하려는 새로운 유학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