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시절에대해서질문드릴려고하는데요

군부독재 시절에요 명동성당은 함부로 못건드렸던 이유가 먼가요? 영화에서 이런데보면은 명동성당은 함부로 못건드렸던거 같아서요 자세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명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곳입니다

    당시 아무리 공권력이라도 함부로 그 성역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무력으로 동원 했었다면 전국의 천주교 신자와, 타 종교 지도자들이

    반발하고 나서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그 당시 우리나라의 최초 추기경이신 김수한 추기경님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그 감당을 못해서 그 안에 못 들어갔죠

  • ​1.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빽' (국제적 외교 관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톨릭의 국제적 위상입니다. 한국 천주교는 로마 교황청(바티칸)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경찰이나 군인이 성당에 난입해 신부님이나 시민을 폭행하거나 연행한다면, 이는 단순히 한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티칸과의 외교 문제로 번집니다.

    ​당시 독재 정권은 미국의 눈치를 많이 보고 국제적 정당성을 얻으려 애썼는데, 전 세계 가톨릭 국가들과 교황청의 비난을 사는 것은 정권 유지에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2. "나를 밟고 가라" : 김수환 추기경의 존재감

    ​당시 한국 천주교를 이끌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상징성과 강단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공권력이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 하자 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신부님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다음 수녀님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그다음입니다."

    ​이 발언은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나부터 죽이고 가라"는 선언이었고, 차마 추기경을 잡아 가둘 수 없었던 정권은 결국 발을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인식

    ​명동성당은 한국 사회에서 **'양심의 상징'**과 같았습니다.

    ​당시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 명동성당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진실이었습니다.

    ​이런 곳을 무력으로 짓밟는 행위는 정권이 스스로 "우리는 부도덕한 깡패 집단이다"라고 전 세계에 광고하는 꼴이 되었기에,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웠습니다.

    ​4. 지리적 요성 (서울의 심장부)

    ​명동은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의 가장 번화한 중심지입니다.

    ​명동성당에서 벌어지는 일은 주변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즉각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성당 안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을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거나 군대를 투입하면, 그 광경이 실시간으로 시민들에게 목격되어 대규모 민중 봉기로 이어질 위험이 컸습니다.

    ​요약하자면

    외교적 측면 바티칸 및 국제 사회와의 마찰 우려

    인물적 측면 김수환 추기경의 강력한 보호 의지와 도덕적 권위

    정치적 측면 가톨릭 신자(표심) 및 일반 국민들의 거센 반발 우려

    상징적 측면 민주화 운동의 최후 보루라는 사회적 약속

    결국 명동성당은 물리적인 벽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곳을 건드렸을 때 정권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외교적 후폭풍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