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12월 정부는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개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의 수장은 총리 대신으로 영의정, 좌의정 등 정부 대신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당상과 낭청 참사 등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업무를 12사로 분담하여 각기 개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2사로는 사대사, 교린사, 군무사, 변정사, 통상사, 군물사, 기계사, 선함사, 기연사, 어학사, 전선사, 이용사로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 계기로 페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