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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義慈王, 599년[1][2] ~ 660년, 재위 : 641년 ~ 660년)은 백제의 제 31대, 마지막 국왕이다.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으로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초대 온조왕으로부터 이어진 백제는 멸망하였고,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수많은 백성들은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의자왕이 술과 음란에 빠져 국사(國事)를 돌보지 않아 나라가 멸망했다는 점을 비판할 때 낙화암에서 투신한 3천 궁녀가 거론되지만, 지도층의 분열과 학민자(虐民者)의 최후를 역사의 필연성으로 기술했던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이 사비성 함락 직전 때는 군대를 보내 싸웠다고 하고 있으며, 낙화암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없다.
낙화암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비슷한 기록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인데, “궁녀들이 왕포암(王浦巖)에 올라 물로 뛰어들어 자살하여 타사암(墮死巖)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라고 쓰여 있다. 비록 3천명은 아니지만, 의자왕의 궁녀들이 타사암에서 물에 뛰어든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안정복의 《동사강목》 권2에는 "여러 비빈(諸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9]
3천 궁녀를 맨 처음 언급한 글은 윤승한이 지은 소설 《김유신》(野談社, 1941년)이고, 최초의 공식 기록은 이홍직이 쓴 《국사대사전》(지문각, 1962년)의 "낙화암" 조항이다.
출처: 위키백과 의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