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옥저는 지금의 함흥을 중심으로 함경도 일대에 걸치고, 동예는 그 남쪽에 접하고 있었으니, 이 지방은 멀리 동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문화와 사회가 뒤늦고, 따라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 국가를 만들지 못하여,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있어서 마을을 다스려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옥저와 동예는 그 나라로 힘이 모여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식량을 얻고자 쳐들어오는 고구려를 막아내지 못하고, 그에 복속되어 해마다 많은 물자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옥저는 농작물이 매우 잘 되고, 생선, 소금 등 해산물도 풍부하였으나, 항상 고구려의 경제적 착취에 시달려 군색한 살림살이를 면하지 못했고, 따라서 사회의 발전은 막히게 되었습니다. 옥저인의 음식, 거처, 옷차림 및 예절 등의 풍속은 대개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나, 다만 고구려의 데릴사위 제도에 대하여 옥저에는 민며느리 제도가 있었습니다.
동예는 농업 사회로서 주로 농사를 짓는 한 편, 누에를 치고 길쌈이 성하였으며, 별을 관측하여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또한 여기서도 10월에는 1년의 추수를 감사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니, 이를 무천(舞天)이라 불렀으며,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공통적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