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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7.02

우리나라 최초금융기관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1,2금융권으로 나눠져서 여러종류의 금융기관 즉 은행들이 많은데요.

이런 수많은 은행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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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초의 금융기관이 어디인지 궁금하군요.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기관은 1878년에 설립된 일본 제일은행 부산 지점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은행은 1897년 2월 19일 창립한 '한성은행'이며, 이후 조흥은행을 거쳐 현재는 신한은행으로 영업중입니다

    즉 한성은행 본점이 곧 우리나라 최초 은행이자 최초의 은행 지점인 셈이죠

    그리고 현재 우리은행이 '우리나라 첫 은행'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의 창립 시기는 1899년 1월 30일로, 신한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보다 2년 가까이 늦습니다

    참고로 우리은행은 상업은행 시절이던 1990년대에도 자기네가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라고 우겼습니다만

    1995년 한국기네스협회가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이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라고 공식 선정한 바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은행제도가 도입된 것은 개항 2년 뒤인 1878년 일본의 제일은행이 부산에 지점을 개설하면서부터이며, 이에 자극을 받아 국내에서도 민족자본에 의한 은행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즉, 1897년의 한성은행(구 조흥은행), 1899년의 대한천일은행(구 상업은행)이 그것이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목표로 하여, 화폐제도의 개혁과 함께 금융제도의 정비를 단행하였다. 1905년 9월에는 약속어음조례와 어음조합조례 등을 제정하여, 조합원이 발행한 어음을 어음조합에서 보증함으로써 어음의 지급보증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른 재래의 외획이나 어음제도는 사라지게 되었으며, 1906년 이후에는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에 어음조합이 설립되었다. 또한, 1905년 9월 공동창고장정이 발표되어 상품의 보관과 예치증권의 발행 및 상품 담보대출을 시행하게 하였으며, 상업어음의 할인과 부동산 담보대출 등도 시행하였다.


    1906년 3월에는 <농공은행조례>가 발표되어 지방 상공업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공은행을 설립, 부동산 담보대출과 지방 공공단체에 대한 무담보 대출, 농공업자 20명 이상의 무담보 연대대출을 시행하게 하여 지방 농공업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그 근본 취지는 일본의 식민회사에 대한 자금 공여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농촌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7년 5월에는 <지방금융조합규칙>이 제정되어 농촌에서의 농업자금 대부, 생산물의 위탁판매, 농촌 필수품의 공동구입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특히 미곡 담보대부를 장려함으로써 농촌에서의 미곡 수집과 공업상품의 판매를 강화하여 농촌의 최하 단위까지 화폐경제권에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1908년 8월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발표하여 토지경영과 관리, 농업 이민의 유치, 척식자금의 공급 등을 담당하게 하여 우리나라 내에서의 토지 획득과 함께 일본인의 농업 이민을 장려하여 일본인 농민에 의한 우리나라 농촌의 지배를 기도하였다.


    한편, 개항과 함께 부산에 진출한 일본 제일은행은 일반 은행업무와 함께 일본의 금본위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지금(地金)과 사금(砂金)을 매입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부가 해관세와 조세를 담보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공여받게 되자 제일은행이 해관세를 직접 징수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정부의 국고금 징수와 화폐정리사업에도 참여하고, 나중에는 제일은행권을 발행하여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제일은행권의 발행은 민족 상인과 우리나라 정부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지만, 일본은 군함을 동원하여 제일은행권의 유통을 강행하였다.


    1909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구 한국은행)이 설립되자 제일은행의 중앙은행 업무는 구 한국은행에 이양되었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이듬해 인 1911년 2월 <조선은행법>을 발표하여 구 한국은행은 조선은행으로 그 명칭을 바꾸어 1950년 6월 한국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한일합방과 함께 일제는 식민지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기존 금융제도를 식민지금융제도로 크게 개편하였다. 1911년 구 한국은행의 명칭을 조선은행으로 바꿈과 동시에 1912년에는 <은행령>을 공포하여 일반 은행을 설립하였다.


    1914년에는 기존 농공은행과 지방금융조합 간의 업무 범위를 조정하였고, 1918년에는 각 농공은행을 합병, 통일하여 특수정책금융기관으로서 조선식산은행을 설립하고 구 지방금융조합을 개편하여 새로운 금융조합을 설립하였다.


    1920년에는 신탁회사를 설립하고, 1922년에는 무진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27년에 발생한 일본에서의 금융공황을 계기로 1928년 신은행령을 공포하여 1929년 저축은행을 설립하고 군소 일반은행의 흡수·통합을 단행하였다.


    1935년 8월 <조선식산계령>을 공포하여 5명 이상의 농민이 식산계를 설립하여 금융조합이나 산업조합에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농촌에서의 공동구매와 공동판매를 금융조합이 장악하게 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물품판매가격 취체규칙>을 공포, 가격통제를 실시하는 것과 함께 식산계를 통해 모은 농산물을 금융조합을 통하여 판매하였다. 당시의 비료 등 공업제품 또한 금융조합을 통해 농촌에 배포시킴으로써 농촌구매력의 증진을 위하여 금융조합의 기능 및 업무영역을 크게 확대하였다.


    광복 이후 미군정이 실시된 9월 7일까지의 공백기간중에 일본인에 의한 37억 원에 달하는 조선은행권의 남발로 격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혼란기에는 통화·금융정책을 수행할 중앙은행의 설립이 이루어지지 않아 군정과 과도정부의 재무부에 의하여 금융정책이 수행되었다.


    정부수립과 함께 1950년 5월 <한국은행법>과 그 자매법인 <은행법>이 공포되어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창립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금융제도도 본격적으로 정비작업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은행법>은 그 시행이 보류된 가운데 모든 금융기관은 전시금융체제로 전환되었으며, 1953년의 휴전 성립 이후 경제 재건이 국가적 당면과제로 등장하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개편이 단행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으로 1896년

    '조선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업하만 영업이 원활치 않아 곧

    해산하게 되었고, 1897년에는

    '한성은행'이설립되었으며, 1899년

    '대한천일은행'이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