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 당시에 중국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광개토대왕은 백제나 신라가 아니라 중원으로 확장하는 정책이었는데요 그당시에 중국은 어떤 상황이엇길래 속수무책으로 고구려에게 장악당한건가요?
광개토대왕 재위 시기는 중국의 분열기로 5호 16국 시대입니다. 북방의 흉노를 비롯해 5개 유목민이 화북을 차지하고 16객을 세워 분열된 시기입니다.
이중 고구려와 국경을 맞댄 국가는 선비족 모용씨의 후연이었습니다. 강력한 중앙 정부가 없고, 여러 나라가 서로 싸웠기 때문에 중국은 외부 세력의 공격이나 침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고구려가 요동반도와 요서 일대를 장악하는 등 서진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후연과 격돌해 요동 반도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심지어 북경까지 공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광개토대왕(재위 391~413년) 당시 중국은 혼란과 분열의 시기, 즉 오호십육국 시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4세기 초부터 5세기 중엽까지 지속된 시기로, 진(晉)나라가 멸망한 이후 한족과 북방 유목 민족들이 중국 북부에서 각축을 벌이던 혼란기였습니다. 이 시기 중국 북부는 안정된 중앙 정권이 없었고, 여러 민족과 군웅이 난립하며 정권이 자주 교체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이 활약하던 시기의 대표적인 중국 세력은 전연, 후연, 북위 등이 있으며, 그중 후연은 고구려와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국가였습니다.
후연은 선비족 출신의 모용씨가 세운 나라로, 요동과 요서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왕권이 약하고, 귀족 세력 간의 분열, 민족 간 갈등 등으로 인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정세는 고구려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후연의 내부 혼란을 틈타 적극적으로 요동 지역을 공략하였고, 실제로 395년~398년 사이에 대규모 정벌을 통해 후연의 요동성 등을 공격하며 고구려의 세력을 만주 지역으로 확장시켰습니다.
후연은 고구려의 연이은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후 내부 반란과 외부의 침입으로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당시 중국 남부는 동진(東晉)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한족 중심의 동진은 북방의 혼란을 수습할 여력이 없었고, 고구려의 세력 확대를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광개토대왕은 중국 북부의 정세 불안을 정확히 판단하고, 이 틈을 이용해 고구려의 군사력과 정치력을 집중적으로 발휘하여 요동을 장악하고 국력을 북방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