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가 티벳불교에 심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나라는 서진하면서 영토를 넓혔고 이 와중에 티벳에서 접하게 된 티베트의 불교에 심취하게 되는데 원나라가 티베트불교에 빠져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와 네팔 그리고 몽골 등지를 포함한 히말라야 산맥과 인접한 지역에서 믿는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종교적 스승인 라마를 중시한다고 하여 라마교라고도 불립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 시대에 쿠빌라이 칸의 보호를 받으며 중국, 한국, 일본까지도 뻗어나갔고, 현재는 티베트 디아스포라로 인하여 달라이 라마가 직접 티베트 바깥으로 피신하여 티베트 망명 정부를 세우는 것과 같은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나라를 세우고 몽골 지배층들의 생활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이는 한족화라기보다 원래 물욕이 강했던 몽골인들의 습성이 정복을 통해 극대화되며 사치에 탐닉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으로 그들은 유교, 도교 등 중국 교유의 사상과 문화를 접하기는 했지만 이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 정복 후 접하게 된 티벳 라마교에 심취하는 등 중국 한족 문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해갔다고 합니다. 애초에 유목민의 문화는 유교로 대표되는 정주민, 농경민의 문화와 너무 달랐고 정반대라 할 만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충, 효, 분수에 맞는 행동 등 유교의 질서는 그들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막내아들에게 가문을 물려주는 말자상속 전통이 있는 그들에게는 연장자를 우대하고 장남을 우대하며 명문에 따른 충성을 강요하는 유교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였고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618년-907년)는 중국 역사의 한 시기로, 티벳불교에 관심을 보였던 주요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주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적 이익: 원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인근 지역과 교류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티벳은 중앙 아시아와의 경로를 통해 중국과 연결되는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티벳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종교적 영향: 티벳은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티벳 불교의 수도인 라싸는 중앙 아시아와 중국의 불교 문화와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원나라는 중국 내에서도 불교를 보급하고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티벳과의 관계를 통해 불교 문화의 확산과 육성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 이익: 티벳은 특히 소금, 털, 목재 등의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원나라는 이러한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고 교역을 강화하기 위해 티벳과의 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문화 교류: 원나라와 티벳은 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와 관계 강화를 추구했습니다. 티벳 불교의 성질과 문화 요소를 중국 내에 소개하면서 상호 문화 교류를 촉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나라는 티벳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티벳불교와의 교류와 유대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이는 중국과 티벳 간의 정치, 경제, 문화 교류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골이 티베트를 바로 진공한건 징기스칸이 죽은후 오고타이 칸이 탕구트와 금나라를 멸망시킨후 티베트를 침공하였습니다. 그 당시 티베트는 정종합일의 시대라 승려들이 나라의 실질적인 원수로 승려들이 전쟁을 이끌어 반항했습니다. 몽골은 당시 그냥 몽골의 기본종교인 샤머니즘 정도로 생각하고 승려들과 사찰들을 죽이고 불사르고 하였는데 이런 행위가 티베트의 전체적인 반항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이 지역이 고산지대로 몽골이 원하는 초원도 많지 않아 토지를 차지해봐야 별로 약탈할만한것도 없고 또한 이곳에 오래 있으면 고산반응때문에 몸이 불편하기도 해서 전쟁을 해야 하나 마나 한 상황이 된거지요. 이에 몽골은 그냥 티벳은 나라보다 종교수령만 섭외하면 이 지역은 그냥 점령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티벳불교의 가장 강한 세력인 샤카파를 회유합니다. 당시 티벳도 여러 종파가 나누어서 다스리는 분열상태라 샤카파도 다른 종파를 밀어내기 위해 몽골의 군사적인 힘이 필요했던거지요. 그리하여 티벳은 몽골의 통치를 인정하고 몽골은 티벳의 종교를 인정하는 상황에 이른거지요.
이런 과정을 걸쳐 수용된 티벳불교를 알고보니 몽골인들이 신앙하기 좋은 종교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나라는 1271년 쿠빌라이 칸이 세운 중국의 몽골족 왕조입니다. 원나라는 서진하면서 티베트를 정복하였고, 티베트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원나라는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삼고, 티베트 승려들을 등용하여 정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원나라가 티베트 불교에 빠져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의 통치 이념인 유교와 잘 어울렸습니다. 유교는 전통적인 중국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사상이며, 티베트 불교는 윤회와 해탈을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이 두 사상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원나라의 통치 이념에 잘 맞았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의 통치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티베트 승려들은 원나라의 통치에 충성하였고, 원나라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티베트 승려들은 원나라의 법률을 집행하고, 원나라의 백성들을 교육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의 예술, 건축,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예술 작품으로는 티베트 불교 사원과 티베트 불교의 그림 등이 있습니다.
원나라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심은 티베트 불교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원나라의 지원을 받아 크게 발전하였고,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은 티베트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베트불교가 처음 몽골에 들어온 것은 몽골제국이 중국을 거쳐 티베트까지 영토를 확장하던 오고타이 황제 때였다. 오고타이칸의 둘째 아들 쿠텐은 티베트 중부지역을 관할하던 중에 사캬(Sa-Skya) 판디타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불교 교리를 듣게 된다. 쿠빌라이는 인질로 몽골 왕실에 남게 된 사캬 판디타의 조카 팍파(1235-1280)으로 인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후에 칸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그로 인해 몽골 왕실과 지배층에 티베트불교가 전파되었다. 원 세조 쿠빌라이칸이 티베트불교를 국교로 삼아 장려한 것은 대내적으로는 백성들의 통치와 제국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고, 대외적으로는 팍파를 국사로 삼아 자신의 수하에 둠으로써 티베트를 정치적 속국으로 효율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룩 콱텐, 1984:338). 쿠빌라이칸 이후의 몽골제국의 칸들은 티베트불교를 국교로 신봉하였고 티베트의 라마승들은 원나라 황제들의 정신적인 자문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했다. 그러나 당시 티베트불교는 왕족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종교였으며 일반 몽골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 민간신앙인 샤머니즘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