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살짝꾸준한향나무
우리나라절은 왜 높은곳에 많은지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네요.
화창한 날씨에 지인과 가까운 절에 한자리 차지하고 쉬고 왔는데 문득 우리나라 절은 산좋고 경치좋은 높은 곳에 자리잡았는지 궁금해지네요~~^^
7개의 답변이 있어요!
절 풍경은 참 이쁜데 숨이 턱밑까지 차서 네 발로 기어 올라가다 보면
여기가 극락인지 지옥인지 정신이 가출하는 대환장 잔치가 벌어지지요
옛날 스님들이 도 닦으러 간 게 아니라 그냥 잔소리 많은 속세 사람들 피해
야반도주한 게 틀림 없어요 ㅎㅎ
조선시대 억불정책 때문에 한양 도성에서 쫒겨나 강제로 등산 동호회
정회원 된 눈물겨운 역사적 사연도 숨어있고 그래요
덕분에 우린 주말마다 허벅지 터지며 강제 하체 운동 당하지만
맑은 공기 마시며 힐링하니 그나마 위안 돼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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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된 답변비전문가지만 에전에 들은 교육에 의하며는 한국은 동쪽이 높고 서쪾이 낮게 대잇대여,
그리고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동쪽은 분명 발산이 일어나서 뜯어져 나가게 댓고 그래서 과거 판대륙이었던 것에서 일본이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고, 서쪽은 그냥 빙하가 녹으며 물이 들어온 것이래여.
그런 이유로 발산이 일어난 곳은 지대가 높고 산맥이 많고여, 서쪽은 상대적으로 그런것이 적어여. 특히 남쪽의 경우는 평지가 잇어 농사를 짓기가 좋구여.
아무튼 산이 많은 이유는 일단 큰 발산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비전문가적 시선에서는그렇게 생각댜여. 그것이 한두세기가 아니라 한반도가 만들어지는 시기까지 쭉이어져있었기때문에여.
현재 남아 있는 절은 경치가 좋은곳에 많이 있는게 보이는데요,풍수지리나 여러가지 영향으로 그런곳에 절이 있죠, 하지만 절이 그런곳에만 있는게 아니라 도시 내부 외부에도 있었지만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그런 도시 근처에 있는 절들은 폐찰이 되어버렸죠
삼국, 통일신라 시대부터 명산 중심의 풍수지리설과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거기에 조선 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도성 출입이 금지되면서 사찰들이 조정의 탄압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지고 화창한 날, 산사에서 보내는 휴식은 정말 마음이 여유로워지지요.
우리나라 절이 유독 경치 좋고 높은 산속에 많이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역사적, 종교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1.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
(가장 결정적인 원인)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도심이나 평지에도 대형 사찰(예: 경주 황룡사, 익산 미륵사 등)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며 강력한 불교 억압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도성 안의 절이 폐사되고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금지되면서, 스님들과 사찰은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참선과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특성
불교는 세속의 번뇌를 떠나 마음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얻는 탈속(脫俗)과 수행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끌벅적한 마을보다 한적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한 산속이 조용히 정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3. 신라 말 '선종(禪宗)'의 유행과 '구산선문'
신라 말기, 기존의 왕실·귀족 중심 교종 불교에 반발해 스스로 참선하는 선종 불교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때 선승들이 중앙 권력과 거리를 두고 지방의 명산에 대구조의 산문(구산선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산지형 사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4. 풍수지리설과 '산천비보(裨補) 사상'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 등이 발전시킨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국토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습니다. 산세나 기운이 약하거나 흉한 곳에 절이나 탑을 세워 나라의 나쁜 기운을 누르고 기운을 보강한다는 '비보풍수' 사상이 유행하면서 산 곳곳에 절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5. 고유의 '산신(山神) 신앙'과의 결합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산을 신령스럽게 여기는 산악 신앙을 깊이 믿었습니다. 불교가 민간에 포교되는 과정에서 이 산신 신앙을 자연스럽게 포용했고, 그 흔적이 현재 대부분의 절에 있는 '산신각(山神閣)'이나 '칠성각'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산으로 들어갔던 아픈 역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연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한국 특유의 '산사(山寺) 문화'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좋은 화창한 날에 멋진 풍경을 보며 쉴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우리나라 절이 높은 곳에 많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어요. 먼저 불교가 전해지던 시기에는 산이 사람의 일상과 떨어진 수행 공간으로 여겨졌고, 번잡한 마을을 벗어나 조용히 명상하고 공부하기에 산이 적합했습니다. 산의 숲과 계곡은 물을 구하기도 좋고 주변 경관도 아름다워 수행자들이 머물기 알맞았고요.
역사적으로는 평지의 좋은 자리가 이미 마을이나 관청,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어서 사찰이 들어설 공간을 찾다 보니 산자락이나 골짜기로 올라간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쟁이나 화재가 잦던 시기에는 외적의 눈을 피하고 재난을 줄이려는 이유도 있었고, 산성이나 교통로 가까이에 자리한 절은 지역의 신앙과 휴식 공간 역할을 함께 했습니다. 풍수적으로 산의 기운과 물길을 중요하게 본 전통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모든 절이 같은 이유로 높은 곳에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결국 수행에 좋은 고요함, 물과 숲, 역사적 입지, 신앙적 상징이 겹친 결과라고 보면 자연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