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은 비록 안동 김씨 세도로 부터 견제를 피하기 위해 파락호 행세를 했지만 직접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했던 정책에 대해 사대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통치체제 정비 및 개혁 대상자인 안동 김씨는 사실은 소외된 일반 사대부에게도 공감 사항이었습니다. 또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천주교 탄압 및 통상수교 거부 정책도 사대부들에게 공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원 철폐와 호포제 실시, 경복궁 중건에 대해서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1873년 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물러납니다.
사도세자의 증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손자이자 고종의 친아버지로 조선시대 4명의 대원군 중 유일하게 생전에 대원군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노련한 정객답게 뛰어난 화술을 가졌으며 음담패설의 달인으로 좌중을 자주 웃음바다로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를 풍미한 인물답게 그 재치나 언변과 관련된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