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은 고래 문종 시기 문신이자 유학자입니다. 그는 해동공자라고할 정도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목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현종, 덕종, 문종 네 왕을 섬기며 문하시중까지 지냈습니다. 특히 벼슬에서 물러난 뒤 후진 양성과 교육에 큰 뜻을 두고 1055년 송악산 아래 자신의 집에 구재학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최충은 학문적 소양과 도덕성을 겸비해 '해동공자'란 별명처럼 유학에 의한 도덕 세상을 꿈꾼 이상적인 학자였습니다. 성품이 고결하고 원칙과 지조를 중시여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