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는 창군 및 초기 운영 과정에서 일본 육사 및 만주군관학교 출신 창군 원로들에 의해 제도, 용어, 교육 방식 등에서 지대하고 깊은 일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창군기와 초기 육사의 일제 영향인적 구성: 초대 육참총장 이응준을 비롯한 창군 주역들과 초기 군사영어학교 및 경비사관학교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일본 육사나 만주군 출신이었습니다.명칭과 제도: '사관학교'라는 명칭과 생도 제도 자체부터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유산적 성격을 지니고 출발했습니다.교육 및 훈육 방식: 미군정의 지원과 미국식 교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도들을 가르치고 통솔하던 교관과 선배 기수들은 자신이 보고 배운 일본군식 방식을 자연스럽게 대물림했습니다.군문화와 억압적 관행의 전수수직적 폭력성: 점호, 집합, 얼차려, 사생활 통제 등 강력한 명령 불복종 처벌과 구타·가혹행위 기반의 병영 부조리는 구 일본군의 악습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정신교육의 형태: 개인의 인권보다 집단의 복종과 맹종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 군기 문화 역시 일제 군국주의 잔재가 오랫동안 잔존한 결과입니다.제도적 변화와 한계1980년대까지도 일본군·만주군 인맥이 군 고위직과 사관학교 지휘부를 차지하며 그 기조가 이어졌으나, 이후 학군 장교(ROTC) 및 3사관학교 등 출신 다변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미국식 시스템 및 자체 개혁으로 많은 부분이 희석되었습니다.다만 의식 구조와 상명하복의 강압적 풍토 속에는 여전히 일제 군대 문화의 그림자가 깊게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