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이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 올린 시무 육조에 양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십만 이라는 수는 확인되지 않으며, 이이는 양병은 양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면서 우선 양민부터 하고 나서 논의할 일이다 주장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 볼때 10만 양병설은 불가능한 것으로 당시 조선 인구가 1200만정도 되었는데 10만이나 되는 군사를 훈련하고 먹이는 비용은 너무 막대한 지출이어 조선으로서는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법이었고, 결과적으로 10만의 군대를 모았다고 해도 백성의 민심이 나라를 떠나버리기 때문에 의병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수 도 있습니다.
또 1200만명 중 절반은 여자, 나머지 600만 중 왕족, 양반, 노비 등의 천민을 제외하면 징발 대상은 한정적이며 양반의 경우 무과에 급제해 장수의 신분으로 병역을 이행할수 있긴 하나 모든 양반이 무반도 아니며, 조선 인구에서 성인 남성 10만명을 차출하면 조선 경제를 마비시킬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