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탕화는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서달, 상우춘 등에 비해 지나치게 박하게 대우받은 측면이 있다. 이는 탕화가 상주에 주둔하며 장사성을 방어할 때, 술에 취해 자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떠들다가 들뜬 나머지 경솔하게도 장사성에게 붙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탕화는 개국공신 논공행상에서 공작이 되지 못하고 후작 가운데 첫 번째가 되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복이 되었다. 탕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근신했고, 결과적으로 홍무 연간에 있었던 숙청을 모두 피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