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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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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탕화는 어떻게 주원장의 숙청을 피했나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30년 동안 즉위하면서 정말 많은 숙청을 했습니다. 숙청의 대상에는 개국공신부터 혈육까지 포함되었는데 탕화는 이를 피했습니다. 그렇다면 탕화는 어떻게 주원장의 숙청을 피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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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원장의 피의 숙청으로 주변의 모든일들을 죽이고 주원장의 최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는 탕화만이 남았을 때 탕화는 결심을 하고 자신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군대를 지휘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시골로 내려가 묘 자리나 찾아보면서 죽을 때를 기다리게 해달라고 주원장에게 간청을 한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탕화의 진심어린 청에 마음이 움직였고 바로 허락하고 집터는 물론 집을 지을 수 있는 돈도 하사하면서 그러면서 1년에 한 번은 남경으로 올라와 문안인사를 올리라 명령했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다른 측근에 비해 유독 탕화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홍건적 시절부터 다른 장수들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탕화는 한결같이 곁을 지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탕화는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서달, 상우춘 등에 비해 지나치게 박하게 대우받은 측면이 있다. 이는 탕화가 상주에 주둔하며 장사성을 방어할 때, 술에 취해 자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떠들다가 들뜬 나머지 경솔하게도 장사성에게 붙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탕화는 개국공신 논공행상에서 공작이 되지 못하고 후작 가운데 첫 번째가 되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복이 되었다. 탕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근신했고, 결과적으로 홍무 연간에 있었던 숙청을 모두 피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