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회 교수님이 통일벼를 개발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해도 큰 식량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데요.
그것을 돌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통일벼라는 신종품인데요.
통일벼가 보급되고 식량 자급에 성공해 녹색혁명을 이끌어 냈다고 하던데, 이 통일벼의 개발과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경태 과학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식량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립농업과학원의 박남춘 박사가 1974년에 새로운 벼 종자를 개발했습니다. 이 벼 종자는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벼는 고산지대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고, 일반 벼보다 높은 수확량과 내추럴 리프트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통일벼는 종자의 수명이 길고, 재배가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농민들이 쉽게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통일벼의 개발은 농업 기술과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식량 자급률이 높아져서, 식량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 농업은 빠르게 발전하면서, 농산물 생산 및 수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통일벼는 1966년에 개발되어 시험재배를 거쳐 1972년부터 우리나라 전국으로 확대, 보급된 벼 품종의 이름이다.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초청 연구원이었던 허문회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일본 벼 유카라(YUKARA, 자포니카 품종), 대만 벼 TN1(인디카 품종)과 국제 미작연구소의 IR8의 3원교잡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품종은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 품종이라 하여 IR667이라고도 불리나, 한국에서는 이 품종을 '통일'이라 이름 붙였다. 이 품종은 재배가 까다롭고 미질이 좋지 않아 1992년 이후 농가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뛰어난 생산성으로 70년대 우리나라 식량자급을 이루게 한 녹색혁명의 주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