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형평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일제 강점기 차별에 반대한 운동으로 형평 운동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평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본래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백정의 차별은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일제는 한국인들을 이간 분열 시키기 위해 백성의 처우를 개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진주는 백정 집단이 많이 모여 살았으며, 차별에 대한 불만이 크게 누적된 곳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백정들이 특정 마을에 모여 살았습니다. 특히 진주처럼 상업과 행정이 발달한 곳에서 더 눈에 띄게 집단화되었습니다.

    진주의 이학찬 등이 주주도하여 형평사를 만들어 신분 차별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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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형평운동은 진주에서 만들어진 단체인 형평사가 주최한 신분 해방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형평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이유는, 그 지역에서 백정들이 많이 거주하였기 때문입니다.

    백정들은 삼남지방, 즉 지방에 많이 거주하였는데 특히 진주쪽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진주의 지리적 위치 자체가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쪽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항구가 있기에 많은 인구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형평운동이 일어났던 1920년대에는 사회운동와 인권 교육이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진주는 지리적으로도 외부의 이념들이 들어오기 좋기도 하였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형평사 자체가 백정 뿐만 아니라 진주 지역의 사회운동가와 유지들도 참여하여 진행하였기에, 이러한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진주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