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문가 김찬우 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시대의 흐름과 맞닿아 풍속화를 그리게 된 것 입니다.
아시다시피 김홍도나 신윤복 모두 국가의 서화를 담당하는 도화서의 화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공무원 신분으로 궁안에서 제작되는 작품들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래서 도화서 소속으로는 업무외 그림을 그리는 것 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엔 풍속화를 바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산수를 그리거나 병풍에 들어가는 십장생등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조선말 상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중상계급 등이 부상하고 서민의 삶과 의식이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산계급이 족보를 구매하는 등 신분제가 혼란을 맞을 시기에 그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서민의 삶을 표현하는 풍속을 그리기 시작한 것 입니다.
김홍도는 풍속화의 주제로 하층민의 생활 모습들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의 경우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들을 그릴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 때문에 신윤복의 경우는 도화서에서 재명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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