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닝터 전투의 승리 (1949년)>
국공내전에서 밀리던 대만군(국민당)은 배수진을 치고 진먼현을 사수했습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군이 진먼현 고닝터 해안으로 상륙 기습을 감행했으나, 대만군은 전차를 앞세워 공산군 2만여 명을 전멸시키거나 생포하며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로 공산군의 대만 본섬 침공 계획이 좌절되었습니다.
<제2차 대만해협 위기: 8·23 포격전 (1958년)>
중국 공산당은 1958년 8월 23일부터 약 44일간 진먼현에 47만 발이 넘는 포탄을 퍼붓는 무차별 포격을 가했습니다. 섬을 고립시켜 항복을 받으려는 전략이었습니다.
미국의 개입: 미국은 해군 전함을 파견해 대만 보급선을 엄호했고, 최신형 공대공 미사일(사이드와인더)과 대형 포를 대만군에 지원했습니다.
지하 요새화: 대만군은 섬 전체를 거대한 암반 지하 요새로 만들어 포격을 버텨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위한 정치적 묵인>
마오쩌둥은 진먼현을 완전히 점령할 군사적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정치적 이유로도 남겨두었습니다. 대만이 진먼현마저 잃고 대만 본섬으로 완전히 고립되면 미국을 등에 업고 아예 '대만 독립'을 선언해 버릴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진먼현을 대만 영토로 놔둠으로써 "우리는 아직 내전 중이며, 언젠가 합칠 하나의 중국이다"라는 연결고리를 남겨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