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수민 전문가입니다.
미끄러운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발과 바닥 사이에 마찰력이 얼마나 만들어지느냐의 차이예요.
잔디밭을 먼저 보면, 풀잎 하나하나가 신발 밑바닥의 요철 사이에 끼어들면서 서로 맞물려요. 신발 바닥의 울퉁불퉁한 패턴과 잔디의 풀잎이 마치 찍찍이처럼 걸리는 거예요. 여기에 흙의 거친 표면까지 더해지면 마찰력이 충분히 커져서 발을 힘껏 차도 미끄러지지 않고 그 힘이 그대로 추진력으로 바뀌거든요. 축구화 밑에 스터드가 달려 있는 것도 이 맞물림을 극대화해서 급격한 방향 전환에도 발이 밀리지 않게 하려는 설계예요.
얼음 위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얼음 표면에는 영하의 온도에서도 아주 얇은 액체 비슷한 층이 존재해요. 얼음 맨 바깥쪽 분자들은 위쪽으로 결합할 상대가 없어서 고체 상태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흐물흐물한 상태로 남아 있거든요. 이 층이 윤활유처럼 작용해서 신발과 얼음 사이에 끼어들면 아무리 거친 신발을 신어도 맞물릴 표면이 없어져요. 기름칠한 바닥을 걷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거예요.
게다가 얼음 표면은 극도로 평평하고 단단해서 신발 바닥의 요철이 파고들 수가 없어요. 잔디는 풀잎이 눌리면서 신발을 감싸주지만 얼음은 그런 변형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접촉면이 매끄러운 면 대 매끄러운 면이 되어버리거든요. 맞물림도 없고 표면 층은 미끄럽고 파고들 여지도 없으니 마찰력이 극단적으로 낮아지는 거예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신으면 오히려 이 낮은 마찰을 이용해서 적은 힘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일반 신발로는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니까 넘어지기 쉬운 거예요. 겨울에 얼음 위를 걸어야 할 때 짧은 보폭으로 발바닥 전체를 동시에 딛으라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접촉 면적을 넓혀서 그나마 마찰력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원리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