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의 군사적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왕건은 새 나라를 세웠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우호적인 정책을 통해 왕권을 안정화시키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왕건은 유력 호족을 포섭하기 위해 사성 정책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고, 그들의 딸고 결혼을 통해 인척 관계를 형성하여 반란 가능성을 줄이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입니다. 또한 혼인 관계는 딸을 통해 그 호족을 포섭하면서 견제함으로써 일종의 안전 장치를 마련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왕건은 유력 호족의 딸과 결혼 관계를 맺어 부인 29명, 자녀 34명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왕위 계승 경쟁을 심하게 만들어 태조 왕건 사후 후계를 놓고 왕위 다툼이 발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