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처음처럼그때처럼
베리스모 오페라는 왜 신화 대신 서민의 삶을 다뤘나요?
이탈리아의 베리스모 오페라가 이전 오페라들과 다르게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소재로 삼았다고 배우는데, 왜 이런 사실주의적 경향이 오페라에 나타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가 등장한 것은 단순히 작곡가들이 “평범한 사람 이야기도 써보자”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사회와 예술 전체에서 일어난 큰 변화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1. 먼저, 오페라의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 오페라의 세계를 생각해보면,
왕과 왕비
귀족
영웅
신화 속 인물
역사적 위인
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 《돈 카를로》, 《나부코》 같은 작품도 거대한 역사와 정치, 궁정,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요.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작가와 예술가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왜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농부, 노동자, 서민, 질투하는 남편, 가난한 연인, 떠돌이 광대 같은 사람들이 예술의 주인공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2. 결정적인 배경은 '사실주의 문학'입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사실 갑자기 오페라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먼저 **문학에서 사실주의(Realism)**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 등이 등장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베르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미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그래서 가난, 질투, 욕망, 배신, 폭력, 사회적 억압 같은 것까지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베르가의 단편 **《시칠리아의 마부(Cavalleria rusticana)》**가 오페라로 만들어집니다.
Cavalleria rusticana
1890년 초연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3. 이탈리아 자체가 크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는 통일 과정과 근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들이 하나의 국가로 묶였고, 산업화와 도시화도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왕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가 중요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가 중요한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특히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가난한 농민과 서민들의 삶이 문학과 예술의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4. 당시 유럽 전체에서 '현실을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이것은 음악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문학에서는 사실주의 → 자연주의가 등장하고,
회화에서도 이상화된 영웅이나 신화보다는 노동자와 농민의 실제 생활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사진술의 발전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술이 점점
“아름답게 꾸며서 보여주는 것”
에서
“현실을 관찰해서 보여주는 것”
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페라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5. 그런데 베리스모는 단순히 '서민이 나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민이 등장한다고 무조건 베리스모는 아닙니다.
베리스모의 핵심은 인간의 감정과 사건을 이상화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현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보면,
투리두가 롤라와 관계를 맺고 있고, 알피오의 아내 롤라에게 다시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질투 → 배신 → 분노 → 결투 → 살인
이라는 아주 원초적인 인간관계가 펼쳐집니다.
왕이나 영웅의 비극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이야기입니다.
6. 《팔리아치》는 이것을 한 단계 더 밀어붙입니다
레온카발로의
Pagliacci
도 대표적인 베리스모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왕도 귀족도 아닙니다.
떠돌이 광대 극단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아주 재미있는 장치가 등장합니다.
무대에서는 광대들이 연극을 하고 있는데,
무대 밖에서는 실제로 그 배우들의 질투와 불륜과 살인이 벌어집니다.
즉,
연극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카니오가 실제 아내 네다를 죽이는 장면은 베리스모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현실성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 결국 베리스모는 '오페라의 민주화'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시대를 연결하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바로크 오페라
→ 왕·신화·영웅
↓
고전주의 오페라
→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사회적 관계
↓
낭만주의 오페라
→ 개인의 사랑·운명·민족·역사
↓
19세기 후반 사실주의
→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
베리스모
→ 그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질투·가난·폭력·사랑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저는 베리스모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영웅의 비극에서 인간의 비극으로 내려온 오페라”
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채택 보상으로 251베리 받았어요.
채택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