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도세자는 사람을 수시로 죽였으며 대리청정을 하는 왕세자의 신분으로 공부와 정사를 멀리하고 수십일씩 궐을 비우고 놀러다녔으며 비구니를 궁안으로 들여 후궁으로 삼고 시전 상인의 돈을 강탈해 갚지도 않고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록부터 승정원일기. 수많은 민간사서들로 교차검증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도
어려서는 학문을 열심히 하여 자신이 지은 시문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아주 총명하였습니다
세자 시절에는 소론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10세 때 신임사화에 대하여 노론들이 잘못 처결하였다고 비판함으로써 일찍부터 노론의 미움을 받을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여러 지방의 환곡에 대하여 덜어내고 더 받는 등 형편에 따라 세금을 조정하여 백성들의 짐을 경감시켜 주었고, 가난한 평민들을 괴롭히는 대동(大同)·군포(軍布)의 대전(代錢)·방납(防納)을 금지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