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맹인학교는 누가 어디에 세운 곳인가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세워진 맹인학교는 어디이며 언제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나요? 궁금하군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최초의 장애인
특수학교는 맹인학교로 1898년
평양에서 로져타 셔우드 홀
선교사에 의해 시작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 평양에 설립된 초, 중등 과정의 특수학교 평양맹아학교입니다.
북감리교 의료 여선교사 홀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맹아교육을 위한 특수학교이며 설립 당시 맹인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평양여맹학교였으나 1909년 농아학교가 설립되며 교명을 평양맹아학교로 바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특수교육의 역사
인지능력, 감각능력, 신체운동 및 특성, 사회적 행동 또는 의사소통능력이 정상으로부터 이탈되어 있는 아동에게 알맞게 교육과정을 조정 또는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을 특수교육이라 한다면, 우리 나라 특수교육은 적어도 5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종 27년(1445년) 3월에 당나라 제도를 본받아 고려 때부터 설치되어 있던 관아인 서운관(書雲觀)에서 훈도 4∼5명을 두고 총명한 맹인 10명을 선발하여 3일에 한 번씩 모이게 하여 음양학을 교육하였는데(세종실록 107), 세조 12년 1월에 서운관을 관상감으로 바꾸었으며, 음양학도 이때에 명과학으로 고쳐졌다.
그후 1898년 선교사 홀여사가 오복례라는 맹인 소녀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맹학교와 농학교가 설치되었고, 일본 총독부에 의해 1913년 제생원에 맹아부가 설치되어 맹아와 농아에 대해 교육을 실시해오다가 광복과 더불어 제생원 맹아부가 1945년 10월에 국립 맹아 학교가 되어 최초의 국립 특수학교로 출발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 오는 동안 오늘날에는 109개의 특수학교와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에 병설되어 있는 3,764개(99년 기준)의 특수 학급에 다양한 장애를 갖은 26,178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특수교육의 괄목할 성장을 가져오게 한 것은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그 이듬해에 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였다. 이 법으로 인해 특수교육기관의 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으며, 특수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 장애 아동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 또한 1994년 1월 특수교육진흥법의 전면적인 개정에 따라 우리 나라 특수교육은 양적·질적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
선사시대
구전되거나 서류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력이 없는 장애인들은 살해되거나 버림받았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 시대에도 장애인이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삼국이 각기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교육기관에서 씨족이나 부족의 아이들을 가르쳤으므로 아마 장애인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의 교육은 국가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무의 교육을 중요시하여 문,무일치의 교육이 중시되었을 것이므로 교육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시대에도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복업에 많이 진출했고 복업의 특성상 어떤 형태로도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조선시대
조선 시대에는 서당에서 거의 모든 부락의 교육을 담당했으므로, 경증 장애아나 부유한 가정의 중증장애인들도 교육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교육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복업이 명과학으로 변경되어 명과학 생도들이 잡학 교육을 받았던 것과 관현맹인의 음악 교육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개화기
1881년에 박정양등 신사 유람단은 일본의 맹아원을 소개하였고 유길준을 1895년 서유 견문록이라는 저서를 통해 구미의 선진 특수교육의 모습을 소개하였다.
우리 나라의 최초의 특수교육은 1894년에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setta Sherwood Hall)여사가 오봉래라는 맹인 소녀를 가르침으로서 시작되었다.
또 Hall 여사는 1900년에는 정진 소학교에 맹여아를 위한특수학급을 신설했 다 . 이것이 바로 특수아동을 위한 특수 학교의 효시이다.
1903년에 Moffet여사는 남자아이들을 위해 맹학교를 개설했고, Pash와 Perry 라는 영국 부인들은 서울에 또다른 학급을 개설하였다. Hall여사 는 맹교육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후에 이익만과 그의 조카를 중국 체후의 농학교로 파견하여 농교육을 연수케 하고 이 두사람의 도움에 위해 1909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농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일제침략기
1912년에 조선 총독부는 제생원 관제를 제정 공포하고, 그 이듬해 제생원 내에 양육부와 맹아부를 두고, 맹아부에서는 맹자와 농자에게 보통 교육을 실시하였다.
1923년에는 박두성 선생은 <조선 점자 연구 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하여 7년만에 한국식 점자인 훈맹 정음을 공포하였다.
1935년에 이창호 목사가 평양에 한국인에 위해 설립된 최초의 특수학교인 광명맹아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20세기의 기적, 3중고를 극복한 성모 헬렌켈러 여사가 1937년 7월 13일 내한 함으로써 한국 장애인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
광복 후
1949년에 제정된 교육법 제 81조 6항에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신앙, 성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의한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는다.]라고 하여 특수교육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거의 외형적 법률에 불과한 것이었고, 오히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걸쳐 경향 각지에 민간 독지가에 위한 사립특수학교가 많이 설립됨으로써,이들 사학이 한국 특수교육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영식 목사는 1946년 우리 나라 최초로 대구에 대구맹아학원이라는 특수 학교를 설립한다. 후에 이와 같은 특수학교가 전국 각처에 생기고, 1956년에는 특수교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현재 대구대학교의 전신인 <한국 사회사업 학교 >를 설립하여 우리 나라에서도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정규과 정을 마련한다. 1979년에는 특수교육계의 오랫동안의 염원이던 특수육 진흥법이 확정.공포 됨으로써 특수 아동의 공교육이 확대되었다.
특수교육 진흥법이 발표될 당시의 학교 수는 51개교 특수학급은 350여개에 불과하였으나 1993년 기준으로 학교 수는 106개교, 학급 수는3,321학급으로 증설되었다. 1995년에는 특수학교는 108개교, 특수학급은 3,440개급로 더욱 더 증설되었고, 1999년 현재에는 특수학교 123개교와 특수학급 3,764개 학급으로 점점 공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1994년에는 특수교육 진흥법을 개정하여 더욱더 장애아의 교육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