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은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 엘리트와 통혼한 것은 정당성 확보와 통치 효율이라는 목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을 정복자가 아니라 아케메네스 왕조의 정당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하고, 궁정 예법, 복식, 관습을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무력만으로 광대한 제국을 다스릴 수 없어 페르시아 관료제, 시트라피를 활용힌 것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청년 3만명을 마케도니아식으로 훈련하고, 수대 대혼례로 91명으로 결혼했습니다.
즉, 알렉산더의 유화적 통치는 정당성 확보, 통치 효율, 인적 자원 확충, 저항 최소화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이상주의적 '문화 융합'이었는지, 아니면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 공학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