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

고려시대 어사대는 어떠한 일을 했었나요?

고려 시대에 최초에 이름이 어사대였으며

성종 14년(995)에 사헌대를 고치고

현종 5년(1014)에 금오대로 고쳤다가

충렬왕 원년(1275)에 감찰사로 고친,

이 어사대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때 정치의 잘잘못을 논의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맡은 관청이며

      어사대는 고려의 감찰 기구라고 합니다.

      현대의 검찰과 감사원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기관장은 판어사대사 및 어사대부입니다.
      어사대의 관원을 대관이라고 하며, 중서문하성의 낭사, 곧 간관과 아울러 대간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사대는 고려시대 시정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어사대는 조선시대의 의금부와 사헌부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법제와 왕실의 격식을 담당하는 식목도감이 있었으며 수상(총재)을 맡은 판이부사가 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지금 으로 따지면 감사원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사대: 고려시대 감찰 기구로 현대의 검찰과 감사원 같은 기능을 수행 했습니다.

      기관장은 판어사대사 및 어사대로 입니다.

      이 기구는 정사를 논의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려 백관을 감찰.탄핵하던 관아 입니다.

      성종 14년(995)에 사헌대를 고친 것으로 현종 5년(1014)에 금오대로 고쳤다가 충렬왕 원년(1275) 감찰하고 고쳤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사대는 고려 때 시정(時政)을 논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관리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맡아본 관청으로,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郞舍)와 함께 대간(臺諫)으로

      불리면서 간쟁(諫爭), 봉박(封駁),

      서경(署經)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관청. 정사(政事)에 대한 언론과 상도(常道)를 벗어난 풍속의 단속 및 백관의 비위•불법을 규찰 탄핵하는 임무를 맡았음. 국초에는 사헌대(司憲臺)라 일컬었으나 성종 14년(995)에 어사대로 개칭하였음. 현종 5년(1014)에는 금오대(金吾臺)로 고쳤다가 이듬해에 다시 사헌대로, 동왕 14년(1023)에는 다시 어사대로 명칭을 바꾸었고, 충렬왕 원년(1275)에는 감찰사(監察司)로, 그리고 충렬왕 24년(1298)에 사헌부로 바뀌는 등 명칭의 변동이 고려 말까지 많이 나타나고 있음. 관직도 어사대의 변화에 따라 자주 변경되었는데, 문종 때 관원을 보면, 판사(判事:정3품), 대부(大夫:정3품), 지사(知事:종4품), 중승(中丞:종4품), 잡단(雜端:종5품), 시어사(侍御史:종5품) 이상이 각 1명씩, 그리고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정6품) 2명, 감찰어사(監察御使:종6품) 10명이었으며 이속으로는 녹사(錄事) 3인, 영사(令史) 4인, 서령사(書令史) 6인, 계사(計史) 1인, 지반(知班) 2인, 기관(記官) 6인, 산사(算士) 1인, 기사(記事) 10인, 소유(所由) 50인을 두었음.

      출처 : 한국고전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