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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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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주의 경제정책중에 억상정책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조선이 국가재정과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재정 확출과 민생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농본주의 경제정책을 내세웠다고하는데요. 농본주의 경제정책중에 억상정책에 대해 아시는분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억상정책은 농업은 장려하고 상업은 억제 한다는 정책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중상정책이 없답니다. 이유는 자신들의 세력 기반인 토지에서 나오는 산물의 양을 늘리고 그것들을 이용한 세력불리기 파벌만들기에 급급했던거죠. 조선후기에 양난으로 인한 농민들의 토지 이탈과 이앙법의 보급으로 소수의 부농층과 다수의 빈농으로 분화가 된거죠.그럼 다수의 빈농을 먹고 살기위해 도시에 가서 일일 노동자가 되거나 일부는 광산으로 일부는 상업에 종사할수 밖에 없는거죠. 이는 농민의 토지 이탈을 의미하는것이므로 농민을 다스리는 양반의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이고 그래서 억상정책을 편거지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말의 혼란과 폐단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조선왕조는 기본적인 경제정책 방향을 농업의 진흥에 두고 상업을 억제하였다. 이는 재화를 생산하는 본업(本業)을 농업에 두고, 나머지 공업과 상업을 말업(末業)으로 상정한 것을 뜻하였다. 그에 따라 각각의 생산 담당자인 농민과 공상(工商)을 상하·귀천의 관계로 설정하였다. 따라서 억말정책은 말 그대로 상업을 억압하는 정책은 아니었다. 상업이나 공업도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지만, 이들이 너무 발전하면 농업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일정한 정도 이상의 발전은 제한하는 것이 무본억말정책이었다.

    • 조선의 중농정책과 함께 억상정책을 단행하였습니다.

      억상정책을 시행한 것은 유고적 경제관에 따른 소비억제 정책으로 사치, 낭비, 빈부의 격차를 방지하고자

      시행한 정책입니다. 사농공상에 대한 차별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한 경향입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후 국가의 상공업에 대한 통제정책이 느슨하면서 상공업과 무역이

      자유로이 전개되면서 조선 후기 경제는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 정치적, 사상적 면에서 불교를 억합하고 유교를 선호하던 억불숭유 정책이 있었다면 경제면에서는 조선초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을 억제하고 농업을 강조하던 억상숭농 정책을 핍니다.

      사치와 낭비로 인한 농업의 피폐, 빈부격차 발생을 우려 사농공상(士農工商) 간의 직업적 차별이 존재하고 유교적 경제관을 통해 검약한 생활을 강조함으로써 소비 억제, 도로, 교통 수단 미미하였고 또한 자급 자족적 농업 중심 경제 체제를 통해 화폐 유통, 상공업 활동, 무역 활동이 부실하게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억상정책이란 농민을 공장이나 상인보다 높이 우대하는 정책으로 당시의 경제가 농민위주로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으며 이러한 농민들은 원칙적으로 출세의 법적 제한을 받지는 않았지만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관료로의 진출이 거의 불가능 하였으며 이들은 조세 ,역, 공납등의 무거운 의무를지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본억상은 농업을 근본으로 삼고 상업을 억압하는 정책으로 이것의 핵심은 상공업을 억압한다는 정책입니다.

      정도전과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마자 공상게라고 하여 공업과 상업에 잡세를 늘려 상공업을 억압하고 조선 초 백성들의 상업을 전부 없애버린 뒤 중앙정부 상점만 허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