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는 노론과 소론이라는 두 개의 큰 당파가 대립하면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당쟁은 세제책립, 대리청정 등의 시비로 격화되어 신임사화라는 큰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영조는 이러한 당쟁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영조는 당쟁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탕평책을 추진했습니다. 탕평책은 당파를 초월한 인재를 등용하고, 양당의 의견을 균형 있게 수렴하는 정책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탕평책은 영조가 서로 다른 무리의 신하들이 골고루 벼슬을 할 수 있도록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제도입니다. 조선후기에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 무리를 지어 편이 갈라졌습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으로 나뉘어져 정치를 했는데 이를 붕당정치라고 합니다. 초기에는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졌지만 갈수록 정치적 싸움만 치열해졌습니다. 이를 해소하고자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우고 탕평책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