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중립 외교는 명의 쇠퇴와 후금의 부상을 현실적으로 본 실리외교입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약해진 조선이 명과 후금 사이에 끼여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따라서 명이 후금 정벌에 원병을 요구하자 강홍립에 1만여 명을 보내되 상황을 보아 유연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강홍립은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과 휴전했고, 조선은 명의 모문룡에게 식량을 지원하면서도 후금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이중 외교를 폈습니다. 이 덕분에 광해군 시기 조선은 후금의 침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인과 일부 남인들이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명에 대한 배은망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기에 폐모살제의 구실로 광해군의 도덕적 약점을 이유로 1623년 인조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했습니다.
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친명배금 노선을 표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후금은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켜 침략했으며, 이어 청으로 국호를 바꿔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