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1864년 처형된 후, 동학교도들은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며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892년 동학교도 약 40명이 고부 관아에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삼례 집회(1892), 보은 집회(1893) 등 대규모 운동으로 확대되었지만, 조정의 강경 대응으로 실패했습니다.
결국 동학교도들은 더욱 조직적으로 결집해 동학농민운동(1894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