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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재규어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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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분묘 도굴은 누가 한 행위인가요?

안녕하세요? 고종 때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이 일어났는데요~ 그런데 왜 남연군분묘를 도굴 했을 까요? 그리고 남연군 분묘 도굴은 누가 한 행위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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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기회를 노리다가, 병인사옥 때 탈출하여 프랑스 제독 로스의 강화도 침범 당시 향토 및 수로 안내인 역할을 했던 프랑스 신부 페롱과 조선인 천주교도와 함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구의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오페르트는 배후인물로 자금을 전담하였던 미국인 젠킨스, 페롱, 선장 묄러, 조선인 모리배 2명, 유럽·필리핀·중국선원 등 총 140명으로 도굴단을 구성하였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 상인인 오페르트 입니다.

    그는 1851년부터 상하이에서 상업활동을 했는데 1866년, 186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 수교를 요구하며 이양선을 타고 조선 해안가에 접근, 1868년 4월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한다며 구만포에 상륙해 덕산 군청을 습격,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 후 이를 통상 요구에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南延君墳墓盜掘事件)은 1868년 고종 5년 상인이자 학자인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충청도 덕산(德山)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에른스트 오페르트 도굴 사건(Ernst Oppert 盜掘事件)으로도 불린다.

    중국 상하이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에페르트는 1866년 고종 3년, 쇄국중이었던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2차례나 거절당한다. 오페르트는 천주교 탄압에 보복한다는 명분하에 1868년 고종 5년에 차이나號(호)를 빌려서 충청도 아산만에 내항해 덕산군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