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정치를 주도했던 루비콘 강을 넘어 내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과 내전 승리로 압도적 군사력과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종신 독재관이 되면서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공화주의자들의 우려를 나았습니다. 즉, 원로원은 로마의 전통인 공화정, 즉 귀족들 사이의 권력 분산을 무너진다고 느꼈습니다.
정치적으로 그를 합법적으로 끌어내릴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비롯한 공화주의자들은 암살이 공화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카이사르 암살은 인기 많은 지도자를 죽인 사건이 아니라 공화정을 지키려는 귀족들이 1인 지배체제에 반발하여 일으킨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