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집권 시기 명성황후와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1873년 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물러나고 나서 흥선대원군의 명성황후에 대한 불만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잘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로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흥선대원군이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와의 대립 속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회복하려 했으며, 명성황후는 일본의 영향력에 맞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갈등은 두 사람의 개인적 대립뿐 아니라, 고종과 흥선대원군 간의 권력 다툼으로도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