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미천왕에 대해 질문드려요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쫓아내어 낙랑군과 대방군이 차지했던 중계무역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나와있는데 이게 중계무역을 고구려가 하게 됐다는 건가요 아니면 낙랑군과 대방군이 갖고 있던 이익만 가지게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낙랑군은 그냥 군현이 아니고 그 주변에 산재한 여러 정치세력에게 중국의 영향을 과시하는 내속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역할을 아는 이상 한의 멸망 이후에도 조위 등이 함부로 폐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낙랑군의 역할이 중국 내지의 유주나 평주의 동이교위로 옮겨갔던만큼 유명무실해진 상태에서 이후 313년에 미천왕에 의하여 낙랑군이 최종적으로 고구려에 편입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한의 멸망 이후, 한의 군현이었던 낙랑군도 세력이 약해진 것이지 그 즉시 없어졌다라고 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질문자께서 이야기하신 낙랑국은 대무신왕 때 정복된 것이 맞을텐데요 삼국사기에 의하면 서기 32년에 낙랑에 호동왕자가 이끄는 고구려군이 최리의 항복을 받아냈으나 서기 37년에는 다시 낙랑을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무신왕 때에 완벽하게 낙랑국을 멸망시키는데 5년이나 걸릴 정도로 힘들었으며 유명한 자명고 일화는 낙랑국의 수준 높은 군사시스템을 스스로 울리는 북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삼국사기는 서기 44년에 한나라가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에 군현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있는데요 이 문장에 대해서는 30년에 낙랑군에서 왕조라는 인물이 태수인 유헌을 죽이고 자력으로 태수에 올랐다가 이를 토벌한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에 대한 오기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에 의거한다면 낙랑군과 낙랑국은 전혀 다른 개체이고 낙랑국은 대무신왕 때, 상당한 지구전 끝에 점령한 지역으로 보시면 될꺼 같고요 낙랑군은 이후 313년에 미천왕이 정복한 지역으로 보는 것이 옳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