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칠공주파리더
칠공주파리더

귀주대첩은 어떤 전술로 이긴 전투인지요?

곧 드라마에서 방영될 것입니다만 드라마가 고증을 정확히 할지 모르겠어서 정확히 알고 싶어 질문드립니다. 어렸을 때 역사만화에서는 살수대첩처럼 둑을 터뜨려 이겼다는 설정도 있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중갑기병으로 전술을 짠 것으로 묘사하더라구요. 어떤 전술로 이겼으며 정말 거란군의 10만명을 모두 전멸시켰나요? 그럼 살아돌아간 사람(거란군)은 얼마나 되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19년 2월 귀주 대첩은 소배압이 이끄는 10만명의 거란군을 고려의 상원수 강감찬의 귀주에서 격퇴한 전투입니다. 수도 공략에 실패한 거란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귀주의 두 강 사이에서 하천을 뒤로 두 나라 대군은 대회전 전투 형태로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특히 뒤 늦게 나타난 김종현의 1만 기병이 포위 공격하여 거란군을 섬멸할 수 있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귀주대첩의 전술은 모두 거란의 움직임을 조기에 읽고 전방과 후방 사이의 긴밇한 연락을 통해 이루어낸 성과라고 여겨집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귀주 대첩 전투에서 강감찬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청야 전술이 주목할 만한 전술 중 하나인데 이 전술은 맑은 청 들 야를 써서 들판을 초토화시켜 비워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토화는 공격시에 사용되며 청야 전술은 수비 상황 에서 활용 된다고 합니다. 강감찬은 군사를 20만 8300명으로 주둔시키고, 흥화진에서 기병 1만 2000명을 뽑아 산골짜기 안에 병사를 숨기고 큰 줄로 소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큰 개천을 막아서 적의 진군을 기다렸습니다. 적이 다가오자 물줄기를 떠트리고 복병을 일으켜 크게 승리 하게 됩니다. 총 10만여명의 거란군 중 살아 돌아간 이는 겨우 수천 명 이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