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10.18

만리장성은 어떤계기로 쌓게 된건가요?

만리장성은 전세계적으로 그 웅대함이 최고수준인데요. 이런 만리장성을 중국에서 만든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이라는 영토와 인력으로 세계적으로 강대국이었는데 왜 건립한걸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최초의 장성은 초나라가 쌓은 장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나라는 남방에서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중원국가들의 영토를 빼앗으며 서서히 북진했고, 그렇게 얻은 영토 중에는 하남성 일대의 영토도 있었는데, 중원이라 불리는 하남성 일대는 국경으로 삼을 만한 자연경계가 없어 초나라는 이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300km가 넘는 장성으로 영토 전체를 둘러싸는 형태의 장성을 건설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19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220년 진시황은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통합된 방어 산성을 쌓기로 하였으며 성벽의 목적은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침략자들의 관습으로부터 중국인의 문화를 보존하는데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북쪽 유목민들의 침입을 경계해야 했습니다. 추수 때만 되면 내려와 온갖 곡식들을 약탈하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유목민들의 침략을 막고자 곳곳에 세워졌던 성벽을 진나라의 시황제가 모두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진시황 당대에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벽으로 흉노족이나 몽골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국시대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시황 집권기 가장 강했던 북방 이민족이 흉노족이었고 지금의 만주 땅에 있던 숙신이나 고조선계 예맥인들은 그다지 남의 나라를 약탈하고 압박하지 않았으므로 궁극적 목표는 흉노족의 남침에 대한 예방차원이었습니다.

    또 이민족 침략 방지가 주 목적이었고, 이민족의 재산인 가축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국경선을 넘어선 가축을 핑계로 이민족이 넘어오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리장성의 축조 이유와 목적은 중원에 위치한 한족 왕조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축조하기 시작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가 기존 성들의 부족한 부분을 새롭게 축조하고, 이어 만든 성곽입니다. 당시 진나라는 흉노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축조하였습니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개축하여 현재까지 이릅니다.

    만리장성이 처음 축조될 당시 산시성에서 보하이만까지 약 1,500km였으나 이후 명나라 때 몽골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보수하여 2,700km에 이르는 현재 규모와 모습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최초의 장성은 초나라가 쌓은 장성이다. 초나라는 남방에서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중원국가들의 영토를 빼앗으며 서서히 북진했다. 그렇게 얻은 영토 중에는 하남성 일대의 영토도 있었는데, 중원이라 불리는 하남성 일대는 국경으로 삼을 만한 자연경계가 없었다. 초나라가 차지한 이 영토는 삼면으로 다른 중원국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초나라는 이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300km가 넘는 장성으로 영토 전체를 둘러싸는 형태의 장성을 건설했다. 이것을 장성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후 장성 건설은 전국시대 강대국들의 트렌드가 되었다. 전국시대 초기, 영역국가로서 재빠르게 변법에 성공한 위나라는 서쪽의 강국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서쪽에 장성을 쌓았다. 이 장성은 지금의 함곡관보다 훨씬 서쪽에 있으며, 지금의 서안시 동쪽에 위치한 화산 북쪽에 그 유적이 남아있다. 길이는 대략 60km 정도로, 진령산맥과 진북산맥을 잇는 형태로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