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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05

삼전도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과거 삼전도라는 곳은 정말 우리 역사에 있어서 치욕적인 곳이라고 하던데, 삼전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요?

그 당시 역사는 어떠했나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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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크한오리233
    시크한오리23323.02.06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전도(三田渡)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및 석촌동 부근에 있던 하중도의 나루터를 말합니다.

    삼전도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중 하나인 삼전도의 굴욕으로 유명합니다.

    삼전도는 특히 한양의 궁궐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남한산성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 정부는 장기적인 항전에 대비하고자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지만, 가는 길이 끊겨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던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와 대신들은 45일 만에 청나라에 항복했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식을 행하였다. 삼전도는 인조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면서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했던 장소였다. 그리고 청나라의 강요로 병자호란의 패배를 인정하고 청나라 황제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를 삼전도에 세웠다. 이후 삼전도는 청나라 사신들이 꼭 시간을 내어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0&levelId=tg_003_2580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삼전도에서 우리나라 왕이 오랑캐인 몽골에 항복을 하고 몽골의 신하가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많은 재물을 노략해가고 노예를 많이 잡아갔습니다. ㅠ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7년 청나라의 대규모 침략으로 조선의 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항전하던 중 결국 항복하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삼전도(三田渡)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및 석촌동 부근에 있던 하중도의 나루터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1637년 2월 24일에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한양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 수 없게 되었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게 됩니다.그러나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끝내 삼전도에서 청나라와 치욕스러운 강화를 맺게되었고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축하성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가 농성 59일만에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

    1637년 2월 24일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를 행한 것을

    말한다. 흔히,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표현된다.


    -출처:위키백과